지금까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앞날을 정확하게 계산하면서 살아본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가기전까지의 사회생활은 빈곤 그 자체였다.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저. "저지르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달간 시골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30만원을 가지고 서울로 상경했다. (사실 이부분은 사기사건의 이야기도 있는데 생략하겠다.) 30만원가지고. 무작정 내 특기인 컴퓨터에 대한 일을 해보고자 용산 전자상가로 갔다. 다행히 용산에서 나를 고용해주는 일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시원을 얻었다.. 고시원 생활비는 한달에 30만원.. 내 월급은 50만원....

이것은 도저히 계산을 하면 살 수 없는 생활방식이였다. 한달동안 뼈빠지게 고생해서 20만원 남는다? 거기에다 생활비는 안쓰나...
결론적으로 나는 3개월만에 몸무게 17키로가 빠졌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물론 중노동이였다. 하루종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이 아니라! 하루 종일 컴퓨터 부품을 날라야 했다.) 나는 돈이 없어 밥을 못 먹었다;
하루 이천원이 내가 쓸수 있는 돈이였다. 그것은 아침에 1500원짜리 담배를 하나 사고 500원짜리 우유를 사먹는 것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소위 이런 고생을 하면서 자취에 대한 것을 조금 알게 되었고. 또 컴퓨터를 반만 알고 있었던 (소프트웨어) 나에게 하드웨어를 알게되었던 좋은 기회였다.
나는 1년간 용산생활하면서 모은 돈은 한푼도 없었으며, 단지 자신감과 컴퓨터 기술들을 습득하는 것에 만족했다. 빠진 몸무게는 군대가기전 고향에 내려가 한달간 있으면서 다시 10키로 이상이 쪄버렸다 ㅡㅡ;

그리고 2년 2개월이 지났다.. 나는 군대를 갔다왔다.
나는 군대를 갔다와선 죽어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겠노라.. 군대에서도 굳게 맹세했었다.
나는 제대후.. 또 무작정.. 서울로 내려왔다.
우선 친구 명식이네 집에서 두달정도 살았고 그 다음엔 잠실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취미를 살려보고자 또는 용산에서의 생활처럼 기술을 배워보고자 사진관에 아르바이트로 들어갔으나 그만두게 되었다.. 월급이 작아서 그런게 아니라;; 사진관이 폐업했다;;;
이런 불운을... 그리고 잠실로 내려가 무작정 이곳 저곳에 내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이력서를 10개 이상 넣었다....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내가 넣은 회사들은 모두 나를 채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집 가까이에 있는 피씨방에 매니저로 들어가게 되었다.
용산에서 배운 기술이 여기에서 사용된 것이다. 나는 이 피씨방에서 6개월이나 일했다.
그러나 나의 헤픈 씀씀이 (취미생활)로 인해 돈은 거의 모으지 못했다;;

6개월즈음 하던때에 나는 취직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또 저질러 보는거다.
나는 한 엔터테인먼트사 콘텐츠팀에 관심이 있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게 되었다.. 내 이력서는 볼품 없었다.. 소위 말하는 대학이라는 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회사에 이력서를 넣을 수 있었던건 단지 포트폴리오 하나였다... 나는 경쟁력이 부족했다..

면접이였다.. 후보자 몇 몇이 쭈욱~ 앉아있었고. 나도 그 사이에 앉아있었다.
면접자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질문을 했다.
" 누구누구씨는 성인 컨텐츠에 대해 거부감이 있습니까? "
" 누구누구씨 가끔은 밤샘 작업을 해야할때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모든 후보들은 모두.. 거부감이 없습니다. 밤샘 잘합니다... 라고는 평범한 대답을 할때

나는 "밤새서 야동보는게 특기입니다." 라는 한마디로 ;; 면접관들을 모두 폭소하게 만들었고, 나는 결국 면접에 통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고난의 시작이였다.

회사는 너무 좋았다.... 처음보는 정말 제대로된 회사였다.. 배정받은 내 책상에 앉으니 여직원이 와서 필요한 물건 체크해 달라고 용지를 주고, 내 책상엔 컴퓨터와 각종 참고 자료들도 가득차있었다.
새로받은 필기도구와 노트들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었고, 내가 하는일들도 내가 좋아하는 일들, 사진을 편집한다거나 동영상을 편집한다거나, 가끔은 홈페이지를 만들고 수정하기도 하는.. 나에게는 적성이 딱 맞는 일이였다.

그런데..... 월급이 나오지 않는거였다...

회사에서 밀고 있는 연예인들은 모두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었고, 그 이외에도 회사에는 많은 부분에서 안좋은 이야기가 들리고 있었다....
삼개월째.. 월급을 한푼도 못 받았다.... 나는 정말 힘들었다...
하루 한끼 라면을 먹으면서.. 회사 점심시간에 남직원들 라면에 붙어서, 서로 조금 더 먹으려는 눈치 싸움을 하고, 정말 최악이였다.... 담배살돈도 없어서 2000원짜리를 카드결제를 하고 ㅜㅜ
더이상 살 수 없어서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본부장은 사표를 받아주지 않으려고 했고 나는 그냥 나와버렸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다음에 일한것은 나에 인생에 큰 반전을 주었지만 지금은 글로 쓰고싶지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나에게 큰 반전의 기회를 준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전국일주를 계획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거라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정해놓은 전국일주 날짜가 가까와오니 불안해 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전과 같지 않게 많은 계산들을 하게 되어 자꾸만 날짜를 연기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많은 생각들이 나를 두겹게 만들었던 것이다............ 티비에서 태풍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이크타고 하는 전국일주다보니 비는 최악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때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많은 생각, 많은 계산을 하게된다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태풍이오기 전날 나는 전국일주를 출발해 버렸다.
처음 출발할때.. 그 두근거림을 잊을수가 없다.. 설레여서? 그게아니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전국일주였음에도 두려워서 였다..

나는 전국일주를 마치면서 홀가분하고 아주 많이 즐거웠었다고 이야기했다. 정말이다. 그토록 원하던 휴가였으니까!! (사실 내가 글쓰지 않은 회사에선 별로 쉬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호주로의 여행이다.

1년생각하고 길게는 2년이라는 시간을 계획하는데.. 솔직히 지금 너무 두렵다.
전국일주하기전하고는 차원이 틀린 그런 두려움...
포기해 그러면 편해..라는 유머가 있는데.. 솔직히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너무 많은 생각들과, 너무 많은 계산들을 하고 있다는거...

어릴적 내가 용산에서 50만원 받으면서 생활하던때의 용기는 어디갔는지.. 제대 후 서울에 무작정 올라와서 무작정 이력서만 많이 넣었던 내 모습은 어디갔는지.. 솔직히 지금은 못 할것 같은 두려움이 많이 앞서고 있다.

과연 내가 호주에서 생활을 잘 할까. 쪽팔리게 삼개월하고 돌아오는건 아닐까? 가서 한국인 망신은 다 시키고 오는건 아닐까........................
솔직히 두렵다... 하지만 이것은 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변한게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변한게 없다.

변한게 없는 봉석이는 언제나 도전적인 모습의 봉석이다.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건다.. 뭐든 도전하라고.. 지금껏 도전에서 실패한 것은 없었다..





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불안해 하고 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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